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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非 子 의 충 고 조선일보 2006 . 01. 01 진 (秦) 나라의 힘이 날이 갈수록 강해질 때, 바로 이웃하고 있던 작은 나라 한 (韓) 의 고민도 따라서 커졌다. 조(趙)· 위(魏)· 초(楚)· 연(燕)· 제(齊) 의 다섯 나라와 힘을 합해 진에 맞서는 합종책 (合縱策) 을 따를 것인가, 아니면 진에 붙어서 목숨을 이어갈 것인가 하는 고민이었다. 한비 (韓非) 는 그런 정세를 정확히 읽고 있었다. 그는 한나라 왕 안 (安) 에게 “ 조 · 위 · 초 와 합종하여 진에 맞서야 한다 ” 고 건의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 법치를 확립하고 부국강병의 길을 가야 한다 ” 고 촉구했다. 그러나 한나라 왕은 한비의 말을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았다. 한비는 한을 떠나 진으로 갔다. 나중에 진의 시황제 (始皇帝) 가 된 왕 정 (政)을 만났다. 그때 진은 한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비는 조국을 구하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 “ 한나라는 작은 나라지만 왕과 신하들이 근심 걱정을 함께 해 온 지 오래 됐습니다. 그러나 조나라는 떠돌이들이 모여 사는 데다가 아래위가 화목하지 않습니다. 조를 먼저 치소서.” 한비는 그러면서 전쟁을 오래 해 온 진나라의 곳간들도 텅텅 비었음을 지적했다. 우선 곳간을 채우고, 법치를 실시해서 부국강병해진 다음, 천하 통일에 나설 것을 건의한 것이다. 진왕 정은 한비의 말을 받아들였다. 법을 만들고, 조직을 정비하고, 권위를 확립하는 이른바 법 (法) · 술 (術) · 세(勢) 의 정치를 해서 천하통일을 할 수 있는 실력을 쌓아나갔다. 그러나 한비의 운명은 비극으로 끝났다. 순자 (荀子) 문하에서 함께 공부했던 이사 (李斯) 가 진왕 정에게 이렇게 모함했다. “ 한비의 목적은 한나라를 보호하는 데 있습니다.” 결국 한비는 투옥 돼 음독 자살해야 했고, 한은 B.C. 230 년 진의 주변 여섯 나라 가운데 가장 먼저 망했다. 진 (秦) 의 중국어 발음은 ‘ 친 (chin) ’ 이고, 중국을 가리키는 영어 차이나(China)는 거기서 나왔다. 역사의 아이러니일까. 한나라 멸망 이후 2236 년이 흐른 2006 년 새해 현재 중국은 갈수록 힘이 강해지고 있고, 이웃 한국 (韓國) 은 외교적 진로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현 정권의 선택은 한 · 미 · 일 공조에 별로 무게를 두지 않는 것이다. 일본과는 끊임없이 트러블을 만들고 있고, 바다 건너 미국의 신임을 받는 일에도 심드렁하다. 2000 여 년 전의 한 (韓) 역시 조(趙) · 위 (魏) 와 의 합종책도, 부국강병의 길도 걷지 않고, 이웃 강국 진에 붙어 목숨을 연명하려다 실패하고 말았다. 14 년 전 한국과 중국이 수교할 때 당시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 (鄧小平) 이 했다는 말은 너무나 섬뜩하다. 당시 중국 외교부장 첸지천 (錢其琛) 이 쓴 ‘ 외교십기 (外交十記)’ 는 덩샤오핑이 이렇게 말했다고 기록했다. “ 한국과의 수교는 우리에게 유리한 점만 있고, 해로운 점은 없다. 우선 장사를 할 수 있어 좋고, 한국과 대만의 관계를 단절시킬 수 있다.… 전략적으로 보아 중·한 수교는 일본을 처리하는 데도, 미국을 처리하는 데도, 동남아 문제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 덩샤오핑의 말에는 한국과 일본·대만·동남아, 그리고 배후의 미국으로 연결되는 합종책을 깨기 위해 한국과 가까워져야 한다는 무서운 전략이 감춰져 있다. 그의 말이 맞았는지 우리는 대만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고, 일본과는 갈등하고, 미국과도 앙앙불락(怏怏不樂)하고 있다. 한비가 되살아나 오늘의 동북아 형세를 본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 한국이여, 일본· 대만 · 동남아 · 미국 과의 합종책을 중시하시오. 권위를 세우고, 부국강병의 길을 걸으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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