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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과 소망에 대한 믿음 내일이 있다고 믿는 사람과 내일이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소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이론이나 철학의 이야기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이란 지금 이 시간의 생활 자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 입니다. 모든 가치관은 그의 인생관에서 유래되고 인생관은 그의 내세관에서부터 형성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내세관은 부활신앙 위에 있어야 합니다. 부활은 믿어도 되고 안 믿어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독교에서 부활을 빼면 기독교는 의미가 없어집니다. 기독교의 골자는 부활입니다. 기독교의 신앙은 철학적인 이야기가 아니며 추상적인 이야기도 아닙니다. 따라서 논리적인 이야기가 아닌 것입니다. 오로지 부활신앙 입니다.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부활이 없다면 일반 종교와 다름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이 세상에서 도덕과 윤리를 강조하다 허구로 끝날 것입니다. 의의, 자유, 평등, 선, 진리, 사랑, 인내 등 무슨 이야기를 해도 부활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사랑해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참아야 하는 이유도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떤 말로도 부활 없이는 진리와 의를 설명 할 수가 없습니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부활이 없다는 것은 내일이 없다는 것이요 소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된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죽였고 하나님은 예수를 부활시켰습니다. 여기에 부활의 능력이 있습니다. 이것이 창조의 능력이며 권능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부활이 십자가 위에 있다는 사실을 잊고 살아갑니다. 있을 수 없는 사건이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는 비참하게 죽어갔습니다. 십자가의 고통, 그 죽음 뒤에 부활사건이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십자가는 의로운 죽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랑이 담긴 희생의 죽음 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가 바로 이 십자가에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는 그 역사가 십자가입니다. 이 완전한 죽음 위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사순절이 시작됨과 함께 많은 극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수난”이 상영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을 다시 생각해 보는 한 주가 되길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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